글꼴1999년; 07
한글글꼴개발원. 글꼴1998 한글 글꼴의 역사와 미래.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9(p147~166)
활판의 역사
1.금속활자
활판 인쇄용 활자에는 금속 활자(철화자, 납활자, 구리활자)와 목활자, 도활자가 있다.
그림1. 도활자
그림2. 목활자
그림3. 금속활자
금속활자 제조: 금속활자는 성현(1439~1504)이 쓴 ‘용재총화’에 중앙관서에서 금속활자를 제작하는 방법이 나와 있다.
우선, 글씨 잘 쓰는 사람에게 글자본을 쓰게 한 다음에 이 글자본을 황양목 같은 나무판에 붙이고 새기게 하여 어미자를 만든다. 주형에 고운 흙을 갈고 나무에 새긴 어미자를 박아서 글자가 옴푹 들어가게 자국을 내고, 이 자국에 새긴 어미자를 박아서 글자가 옴폭 들어가게 자국을 내고, 이 자국에 쇳물이 흘러 들어갈 수 있는 홈 길을 내기 위해 가지쇠를 박는다. 녹인 쇳물을 구멍으로 쏟아 부어 자국으로 흘러가게 하고 식으면 하나하나 떼어낸다. 이러한 방식은 나무에 새긴 어미자를 반복하여 사용함으로 꼭 같은 모양의 금속활자 제작이 가능하다.
(추론해 본다. 목판활자와 금속활자 둘 다 선정후필을 하였다. 즉 이 말은 원도 없이 제작된 디지털 글자체(윤고딕)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정후필을 통한 제작방식은 단순한 기하학적인 이성적 선(감정 없는 선; 기계)이 아닌 인간의 감성과 같은 선이라고 생각한다. 즉 동양의 미의 기준에 어울리는 글자라고 생각한다.)
활자조판: 금속 활자를 채자하여 식자하는 것을 활판 활자 조판이라 한다. 금속활자, 목활자, 도활자는 활자조판을 해서 인쇄한다.(p160)
주자(鑄字)본(本): 금속활자로 조판하여 인쇄한 책을 주자본이라 한다.
초기의 고활자 주자본은 목판본에 비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같는다.
첫째, 한 글자가 유달리 옆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것이 자주 나타난다.
둘째, 본문의 행렬이 곧바르지 않고 좌우로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셋째., 윗글자의 아래획과 아랫글자의 윗획이 물림이 전혀 없다.
넷째, 번각이 정교하고 글자의 모양이 주자의 특징을 잘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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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1년 ~ 1048년 사이(중국 송나라 인종 때), 우리 나라는 고려 정종 7년~문종 2년 시대에 중국의 필승이 진흙활자를 제작했다.<비 금속활자>
- 1200년대에 발명된 우리 나라의 금속 활자는 구리 성분이 50%가 넘는 금속활자로 구리활자(동활자)라고도 불린다.
- 1234년에 세계 최초로 인쇄한 ‘고금정예문’은 한자의 금속 활자였고, 한글 활자는 ‘석보상절(서기1447년)’을 출판할 때 최초로 인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200년대 중반에 독일에서 제작된 금속 활자는 주성분이 납이라 납활자(연활자)라고 한다.
- 1447년 한글활자는 ‘석보상절’을 출판할 때 최초로 인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688년 경 조선 숙종 시대에 도 활자가 출현한 이래, 1700년대 말경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던 것을 200여 년이 지난 1977년부터 도활자 재현 작업에 착수하여 1998년 드디어 샘플 도활자를 재현시키는데 성곡ㅇ한 바 있다. 도 활자는 1800년 초가지 사용되었다는 설도 있다.
<비 금속 활자> - 1729년 우리 나라의 도활자 인쇄는 황해병사로 재임하던 이재항에 의해 1729년에 처음으로 실용화되었다.
<비 금속 활자> - 1819년(순조 19년) 12월에 교니활자(일명 토활자)를 책 인쇄하는데 사용했다는 기록이있음.
- 1880년에 프랑스 천주교 주교 리델의 지도에 따라 일본 요꼬하마에서 처음으로 주조되었단 설이 있다. (가설)
- 1982년 만주 봉천에서 순한글 납활자로 ‘누가복음’ 책과 ‘요한복음’책이 출판되었었는데, 이는 의주 출신의 서상륜과 백홍준이 글자본으로 쓰고 목활자로 만들어 이를 일본 주재 스코틀란드 성서공회에 보내어 요꼬하마에서 납활자를 주조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로 보아 1880년대 초에는 이미 국외에서 한글 납활자가 주조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1880년말에 한글 납활자를 사용한 ‘한불자전’, 1881년 봄에는 ‘한어문전’이 요꼬하마에서 인쇄되었었는데, 이에 사용된 한글 활자의 글씨는 충청도 공주 태생의 최지혁의 것이었다.
- 1883년 7월 박문국이 설치되고 10월 1일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의 창간호가 발행된 것이 근대식 납활자(신 납활자) 인쇄의 최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1884년 광인사에서 근대식 활판기와 한문 납활자와 한글 납활자를 일본에 수입했다.
- 1886년에 정병하의 ‘농정섭요’책이 국한문 단행본으로 간행된 최초의 신 납활자 인쇄 책이었다.
- 1887년에 출판된 ‘예수셩교젼서’책이 최초의 순한글 신 납활자로 인쇄된 책이다.
- 1988년대금속 활자는 주성분이 납이기에 보통 납 활자로 불린다. 납 활자는 100%납이 아니라 80%정도의 납에 안티모니와 주석과 때때로 구리를 섞은 것이다. 납 활자는 정사각형으로 제작하는 것이 정상이나, 일부 신문 활자는 납작하게 특별히 제작한 것도 있다.
- 1892년 무렵 한글 활자와 영문 활자를 직접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 1898년 8월에 제1호를 발간한 ‘뎨국신문’은 순 국문체로 작성되고 한글 전용을 택한 신문이었다.
- 20세기에 들어서는 재래식 금속활자로는 한자가 주로 쓰인 인쇄물을 수동식 기구에 의해 인쇄했으며, 신식의 납활자는 기계화된 인쇄기기로 한글과 한자를 혼용하거나 순 한글로만 인쇄한 것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 1904년을 고비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언론 탄압이 심화되고, 동시에 한국문화말살 정책의 시작으로 인한 한민족의 정기 죽이기와 한글 죽이기 운동이 보이지 않게 진행되어 1945년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40여 년간 한글 활자 문화는 거의 질식 상태에 이른다.
- 1950년 이전까지 박경서, 한충, 백남직의 활자가 전해지고 있었으나, 6.25 남침 때 약탈된 것으로 추측된다.
- 현재의 한글 활자는 최정호 원도의 동아출판, 삼화, 광명, 삼성, 평화당, 보진제 인쇄소 활자가 가장 널리 쓰이고 있고, 박정래 원도의 국정교과서 활자와 민중서관 활자, 대한교과서 활자, 유풍인쇄 활자 등이 있다. 중, 고등학교 검인정 교과서를 주로 조판하던 신일인쇄의 활자는 광명인쇄의 활자와 같다.
(물성을 지닌 활자만이 활자라고 생각한다. 물성이 없는 디지털활자는 글자체라고 생각된다. 내가 생각하는 글자체는 물성이 없는 한 벌의 글자의 양식을 지닌 것이다. 하지만 ‘비금속활자.p155’에서 디지털 활자를 활자의 한 분류로 정의 내리고 있다. 어떤 것을 따라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용어는 혼동이 없어야 한다. 용어와 용어간에는 구별이 있어야 한다. 의미의 중복은 그 용어의 가치를 없게 하는 것이다. 중복되는 의미 없이 사용할 수 있음에도 디지털 활자를 디지털 글자체라고 하지 않고 디지털 활자라고 정의 내리는 이유를 모르겠다. 활자는 물성이 지닌 네모난 사각기둥에 문자나 글자를 볼록하게 튀어나오게 새긴 것을 말하는데 말이다. 활자라는 단어를 쓰면서 디지털활자는 활자라는 의미를 거부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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